대금
http://www.chikwa.net/176   주소복사 
대금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악기인 삼현(거문고·가야금·향비파)· 삼죽(대금·중금·소금)에 속하는 악기로 대나무로 만든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악기중의 하나입니다.

대금은 본래 속이 꽉 찼다는 의미의「대함」이라고 읽는 것이 옳은데, 지금은 대금이라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순수 우리말로는 대금을 「큰저」또는「젓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만드는 재료로는 대나무가 쓰이는데 오래된 황죽이나 쌍골죽을 썼습니다. 황죽은 살이 두껍지 않아 일정한 내경을 얻을 수 없어 전체음정을 고루 맞추기가 어렵고, 중간음이나 저음은 시원하게 잘나지만 고음에서는 대금 특유의 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쌍골죽은 살이 두껍고 단단하여, 일정한 내경을 만들어 바른 음정을 맞추고, 저음뿐만 아니라 고음에서도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병든 대나무인 쌍골죽은 대나무 양쪽에 골이 깊게 파여 있으며, 키보다는 살이 쪄 일정한 내경을 얻을 수 있어, 연주용 악기제작에는 쌍골죽 이상 가는 재료가 없습니다.



대금의 구조

대금의 구조는 가장 위쪽 끝은 막혀있고, 조금 내려가서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가 있으며, 그 아래 청공이 뚫려있는데, 이 위에 갈대 속에서 채취한 청을 붙여 대금 특유의 장쾌한 음색을 만들어 냅니다.
청공 위에는 청가리개를 덮어 청이 파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열고 닫음에 따라 청의 울림을 크고 작게 조절합니다. 청가리개의 위치는 고음이 많이 나오는 곡에서는 청이 시원하고 장쾌하게 울려야 하기 때문에 많이 열어놓고, 저음이 많이 나오는 곡에서는 많이 닫아 놓고 연주합니다.

청공 아래에는 6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지공이라고 하며, 이 지공을 손가락으로 막고 떼어 음의 높·낮이를 만들어 냅니다. 맨 아래쪽에는 칠성공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연주 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제작할 때 음정을 맞추기 위한 구멍으로, 일곱 개 까지도 뚫었다고 해서 칠성공이라 부릅니다.

예전에는 황죽을 사용하여 악기제작을 많이 했는데, 취구를 파는 뿌리쪽 윗부분과 끝부분의 내경이 나팔관처럼 넓어져 칠성공을 여러개 파야만 전체 음정을 조율 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쌍골죽으로 일정한 내경을 얻어 하나에서 두 개 정도만 뚫고 있습니다.
갈대청의 진동, 대금의 독특한 음색

대금은 입김을 불어넣어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입김의 강도에 따라 낮은 음역, 중간 음역, 높은 음역으로 나뉩니다. 낮은 음역과 중간음역에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높은 음역에서는 청공에 붙인 갈대청의 진동으로 장쾌하고 독특한 음색이 납니다.
청은 갈대속에 붙어있는 얇은 막을 뽑아낸 것으로, 이것을 대금의 취구와 지공사이에 있는 청공에다 붙여 떨림판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청은 음력으로 5월 단오날을 기준으로 3~4일 전후, 약 1주일가량이 채취에 가장 알맞은 시기입니다.
그 이유는 이때가 되어서야 갈대 속에 수분이 잘 올라와 뽑아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시기가 너무 이르면 물이 올라오지 않고, 너무 늦으면 청이 말라붙어 뽑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취한 청은 곧바로 청공에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열처리를 통하여 질기게 만든 후 사용하여야 비로소 야무진 소리를 내게 됩니다.
청을 한데 모아 가제나 손수건 위에 올려놓고 뜨거운 김으로 찐 후, 차가운 공기에 식히고 다시 찌고를 몇 번 반복해야 질겨져서 청아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좋은 청이 만들어 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은 대금의 청공에 맞게 잘라 아교로 붙여 사용합니다.
정악대금과 산조대금

대금은 정악대금과 산조대금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정악대금은 최소한 천삼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궁중이나 민간 풍류음악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어온 국악기 중 가장 대표적인 악기입니다. 산조는 남도지방의 무속음악인 시나위와 판소리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음악인데, 대금 또한 이에 맞게 제작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산조대금은 정악대금에 비해 입김을 넣는 취구가 크고, 관의 길이를 짧게 하여, 음폭이 넓고 빠른 음악에 편리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대금에 대한 옛 기록 ㅣ 만파식적

대금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악지,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삼국유사 권2 만파식적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합니다.

신라 제31대 신문대왕은 즉위하여 선왕인 문무대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를 창건하였다. 그 이듬해 5월 초하루에 해관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서, 물결을 따라 감은사를 향해 떠온다는 보고를 하였다. 왕이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일관 김춘질에게 명하여 점을 쳐보도록 하였는데, 점을 친 결과 왕께서 해변에 가시면 반드시 큰 보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달 7일에 이견대에 행차하여 사람을 보내고 그 작은 산을 살펴보게 하니, 산의 모양이 거북이의 머리를 닮았고 또 산위에 대나무가 하나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아뢰었다. 감은사에서 유숙한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가니, 커다란 용이 나타나 이대나무로 저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왕이 돌아와 그 대나무로 저를 만들어 월성에 있는 천존고에 보관하였는데, 이 저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오고 장마에는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온하여졌다. 그래서 이 저를 이름하여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은 대금이 우리전통음악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우리조상들의 음악을 보는 관점과 사상, 그리고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음악을 곧 치세의 근본으로 삼고 대단히 중요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금이 사용되는 음악은 궁중음악부터 민속음악까지 다양하지만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독주악기로 청성곡이나 상령산 등은 세계의 음악평론가들이 격찬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천년을 이어 내려오면서 신묘한 소리로 천하를 화평케 했던 대금의 소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웅건한 기상과 맥을 이어준 훌륭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 심배림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
 
기사작성일 | 2019-02-19   
잘못된 내용이나 의견있으시면 메일 보내주세요. (E-MAIL : khyou@ak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문의